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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수상한 메신저 / 여름날의 첫사랑이여 Prologue

by 씨커Seeker 2016.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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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첫사랑이여

prologue

 

written by. Seon

 

Zen & You

 

 

나에게 있어서 여름이란, 한 마디로 '일상'이었다.

아침에 미적미적 일어나서 밥을 먹은 뒤, 대충 짜여진 수강시간표에 따라 대학에서 강의를 듣고,

끝나면 칼같이 집에 와서는 가방만 훌렁 던져놓은채로 다시 나와

집 앞을 가로지르는 낮은 돌담에 걸터앉아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런 일상. 나만의 나날.

뭐, 비단 여름뿐만 아니라 내 인생은 늘 집에서 대학, 대학에서 집만을 오가는 쳇바퀴같은 구도를 벗어나지 못 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여름만 되면 이 무한궤도의 일상을 바탕으로 깔은 체, 애상적이게 끓어오르는 그리움까지 더해졌다.

 

아이러니한 점이 있다면 그렇게 그리워하고 오매불망 기다리는 나조차도

내가 누구를 떠올리고 있는지 모른달까. 안개가 자욱한 바다처럼 모호한 이미지다.

어렴풋한 기억의 편린이 이끈 습관치고는 써 10년도 넘은지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는 중.

멈추려면 진작 멈췄어야 했다.

 

그래,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내가 다니던 대학이 방학을 맞아서 평소에는 강의로 인해

오후나 되서야 나왔던 여느 날들과는 다르게 여유롭게 아침부터 돌담마실을 나온 것과,

올 여름에 있어서 최고의 더위라며 되도록 집 안에 있으라고

신신당부한 기상캐스터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선선했던 날씨뿐.

이러나 저러나 나에겐 이점이다.

 

낯설기 짝이 없는 여름바람에 바슥거리며 잎파리를 흔드는 나무를 바라보자니 괜스레 마음이 뭉클거렸다.

뒤섞여버린 수천 개의 낡고 새로운 퍼즐조각들 사이에서 추억의 때가 탄 조각들이 더듬더듬 느껴졌다.

분명 가슴이 아플 정도로 그립고 보고싶은데 말이야. 대체 누구였더라.

새삼 내가 이렇게 기억력이 안 좋았나 싶어선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담에서 다리만 흔들거렸다.

아무리 익숙해졌다지만 궁금증은 나날이 그대로.

 

멍하게 정신을 놓은 상태로 좀 이른 시기에 독립을 원한 나뭇잎들이

듬성듬성 흩뿌려져있는 아스팔트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는데, 음, 그 때였던가?

 

"야."

 

이름도 생략한 채로, 어찌보면 건방지다싶이 들릴 수 있는 호칭과 목소리가 이상하게 낯이 익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들어 날 부른 길의 끝을 쳐다본 그 때. 정확히는 길의 끝에 서있던 너를 쳐다봤었지만.

 

"잘 지냈어?"

 

아무튼간, 그 때의 나는 생각했다. 나의 기다림의 대상은 너였다고.

말갛게 웃으며 내 안부를 묻는 너의 얼굴을 보자, 길 잃은 조각들이 자리를 잡았다.

거두어진 안개 뒤에는 찰랑이는 바닷물이 넘실넘실. 못 들을 말을 들은것도 아닌데 이상한 느낌이었다.

내가 믿어오던 세상이 뒤틀리고, 기억이 뒤틀린다.

 

당황스러움에 차마 아무말도 내뱉지 못 해 어벙하게 고개만 끄덕이는 나였다.

그에 다시 한 번 웃는 너의 얼굴에 공존하는 상반된 감정의 잔재. 희비(喜悲).

아… 너가 이렇게 아련한 외모였던가? 
 
세찬 여름날의 바람이 가슴을 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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