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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15

수상한 메신저 / Marguerite 02 새하얀 마거리트가 곱게 심어진 화분을 품에 안은 채, 다음에 또 오겠다는 말을 던지고 간 반짝이는 은발을 지닌 아름다운 외모의 남자. 인사치레라고 생각 했지만 왠지 모를 기대감이 슬며시 부풀어 올라 기약 없는 약속을 가슴 한 편에 품고 지낸지도 벌써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꽃집에 찾아오지 않았다. 입구에 달린 분홍색 종이 자그맣게 흔들리며 소리를 내면 혹시 그 때의 그 남자가 온 것이 아닐까 싶어서 가게 안의 작은 창고에서 꽃을 정리하다가도 부리나케 밖으로 뛰쳐나왔다가 실망한 것도 수차례. 덕분에 꽃을 사러 오신 다른 손님들만 애꿎게 놀라게 해버려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인 것도 여러 번 이었다. 아아, 역시 그냥 해본 말이었던 걸까. Marguerite 02 *리효(@Fiancee.. 2016. 8. 31.
수상한 메신저 / 책편지 책편지 written by. Seon Jumin 활짝 열린 창문 밖에서 사근사근한 풀내음이 실린 바람이 날아들었다. 완연한 봄이 되었음을 알리는 듯 포근함을 흩뿌리는 초록빛 향기. 서재를 정리하던 주민은 손을 멈추고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그녀가 떠난 뒤 처음 맞이하는 봄. 오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계절은 무심하게도 성큼성큼 다가왔다. 푸른 나뭇잎들을 잔뜩 단 채로 올곧게 서있는 나무를 응시하던 주민은 시선을 돌려 서재 한 편에 놓인 책상을 쳐다봤다. 깔끔하게 정리 된 고급스러운 원목 마호가니 책상 위에는 손을 많이 탄 듯 표지가 군데군데 헤져있는 책 한 권이 있었다. 파릇파릇한 향기가 뭉근하게 맴돌던 따스한 봄날, 한 떨기 꽃이 되어버린 그녀를 그리며 쓴 편지가 담겨있는 책. 주민은 절로 쓴 웃음이 지.. 2016. 8. 21.
수상한 메신저 / 꿈 꿈 written by. Seon 707 내일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화창하니 가족끼리 나들이를 가도 좋을 것 같다는 일기예보의 말에 신경질 적으로 TV 전원을 끄고 리모컨을 던졌다. 거실을 나뒹구는 요란한 소리, 짙게 흘러나오는 한숨. 마음에 품은 정인이 한 줌의 재가 되어도,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 늘 새로운 아침과 밤을 맞이했다. 나는 여전히 당신을 보낸 1년 전의 그 날에 얽매여 있는데. 답답한 비소를 지으며 내다본 창문 밖에는 언제나와 같이 하염없이 밝고, 푸르른 하늘이 존재했다. 비라도 오면 좋을 텐데. 맹렬한 기세로 따갑게 내리치는 거센 비를 맞다보면, 당신을 온전히 보낼 수 있을까. 당신이 떠난 것이 다 나 때문이라는, 이 죄책감도 떨쳐버릴 수 있을까. 절로 지어지는 헛헛한 웃음에 입술을 짓깨.. 2016. 8. 17.
수상한 메신저 / Affection Affection written by. Seon Yoosung 포동포동 살이 올라있는 작은 뺨, 생기가 가득 찬 눈동자, 향긋한 살냄새. 특유의 때 묻지 않은 해맑음까지. 더 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그 아이는. - “아이들이 말썽을 많이 부려서 조금 힘들 수도 있어.” 그래도 어린 나이에 이런 곳에 봉사 올 생각을 다 하고, 기특하네. 원장은 교복을 입고 찾아온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허물어져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고아원에서는 군데군데 초록빛 내음이 새어나왔다. 풀냄새, 나무냄새. 자연스레 흘러들어오는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느릿한 동작으로 이곳저곳 두리번 거리고 있자니 원장은 고아원 내부를 돌아보자며 그녀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내부는 외관만큼이나 낡아있었다. 한 발 딛을 때마다.. 2016. 8. 14.
수상한 메신저 / 유일(惟一) 유일(惟一) written by. Seon 707 핸드폰이라는 딱딱한 매체로 나눈 대화가 전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고 친근했다.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가버릴 것만 같은 세상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힘겹게 버티는 나에게 너는 신이 내려준 사자(使者)였고, 빛이었으며, 구원이었다. - 불길한 예감이 들어 달려갔을 때는 이미 늦었다. 처참히 나가떨어진 문, 바스라진 벽지, 산산히 부서져버린 가구들. 너의 온기가 이곳저곳 묻어있던 공간에는 지독한 파열음의 냄새만이 가득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며 덜덜 떨리는 다리로 힘겹게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인 것은 매케하게 피어오른 연기 사이로 힘겹게 들썩이는 무언가, 바스라질 것만 같은 움직임. 불안감이 점철되어 흔들리는 동공에 초점을 맞.. 2016. 8. 9.
수상한 메신저 / Farewell, my summer love Farewell, my summer love written by. Seon Jumin 무자비하게 내리꽂히는 7월의 햇빛을 가득 품은 채, 아지랑이를 꽃피어 올리는 부산의 아스팔트 바닥. 그동안 유래가 없던 지독한 폭염이 될 거라는 뉴스를 전하던 앵커의 말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평소 추위나 더위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언제나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던 주민의 몸 역시 오늘은 꽤 덥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여름용 정장을 챙겼어야했나. 사업거래 차 여러 번 들렸던 부산에서 이정도의 더위를 느낀 적은 없었기에 날씨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다. 게다가 주민은 입었을 때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 드는 여름용 정장보다는 묵직하고 중후한 착용감의 기본스타일 정장을 선호하는지라 애초에 여름용 정장 자체를 많이 가.. 2016.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