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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session

 

written by. Seon

 

Jumin

 

 

종달새가 날아가버린 집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거북할 정도로 낮게 깔린 어둠 속을 날카롭게 헤집어봐도 그가 기다리던 존재는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빠르군.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무언가를 지시한 주민은 전화를 끊고 여기저기 널부러진 흔적의 잔재들을 바라보았다.

바스러진 유리조각, 번져 있는 핏자국. 그가 자신의 취향에 맞추어 사준 그녀의 옷들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끔 찢어져 있었다.

주민은 문득 그 옷이 그녀의 마음을 대변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 옆을 벗어난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그런건 중요치 않으니까.

 

그녀를 뼈째 집어삼키고 싶다는 욕망과 자신을 떠난 것에 대한 약간의 분노를 담은 채,

주민은 구두를 벗고 무심히 맨발로 걸음을 옳겼다.

발 디딜 틈 없이 흩뿌려져있던 자잘한 유리조각들이 박혀와도, 고통은 없었다. 오히려 쾌감이 느껴졌다.

그 작은 손으로 힘겹게 내리쳐 부수었을테지. 비쩍 마른 몸으로 유리를 부수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자 비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부엌에 도달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정갈하게 줄맞춰 세워져있는 와인과 양주.

주민은 잠시 안을 눈으로 훑다가 망설임 없이 구석에 박혀 있는 양주 한 병을 꺼내들었다.

바카디 151. 꽤나 독하다고 정평이 난 양주다. 그리고 자신의 28번째 생일에 그녀가 준비한 선물이기도 하고.

 

'주민 씨는 열정적인 사람이니까 이 양주가 딱 어울릴 거라고 생각해서 준비했어요. 생일을 정말 축하해요.'

 

포근한 눈빛으로 한 점 티없이 말갛게 웃어주던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주민은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 때는 여느 연인들과 다름없는 나날들을 보냈지. 눈을 맞추고, 살을 맞대고, 감정을 나누며.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한 번 잘못 맞물린 두 개의 톱니바퀴는 끼긱끼긱 억지로 돌아갔고,

고통을 호소하던 약한 톱니바퀴 하나 결국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어떻게 하면 그대가 날 떠나지 않았을까.

 

삐- 삐-

잠시 과거를 되짚어나가던 주민은 냉장고에서 울리는 경보음에 다시 현실을 마주했다. 피가 빠르게 식고, 머리는 냉정해졌다.

그녀는 창 밖으로 날아가버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 입가에 조소가 머물렀다. 역시, 다리를 부러트렸어야 했나.

끊임없이 차오르는 가학적인 생각에 주민은 비소를 지으며 손에 들고 있던 바카디를 벽에 내던졌다.

쨍그랑- 하는 파열음과 함께 부엌에 가득찬 독한 알코올 향과 병의 파편들.

 

부엌을 나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린 발바닥살이 토해내는 핏방울은 그녀의 흔적과 덧대어 온 집 안에 묻어 나고 있었다.

마치 그녀와 내가 엉켜 있는 모습같군. 그 생각에 미치자 순간 핏방울이 꽤나 아름답다고 생각한 주민이다.

그렇기에 좀 더 힘을 주어 발을 딛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귀를 울렸다.

결벽증이 의심될 정도로 깔끔함을 추구하는 그의 성격과는 꽤나 모순된 행동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애초에 그는 그녀와 얽힌 순간부터 원래의 한주민으로는 자리 할 수 없었으니까.

 

삐리리리- 삐리리리-

적막을 깨고 울리는 전화 벨소리에 주민은 핸드폰을 꺼내어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찾았나?"

「네, 이사님. 2시간 전에 부산행 기차를 탄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좋아. 곧 가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주민의 입가에는 미소가 들어찼다.

 

조금만 기다려, 나의 종달새.

곧 그대를 찾으러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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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점 보는 김춘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