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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惟一)

 

written by. S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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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이라는 딱딱한 매체로 나눈 대화가 전부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익숙하고 친근했다.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가버릴 것만 같은 세상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힘겹게 버티는 나에게

너는 신이 내려준 사자(使者)였고, 빛이었으며, 구원이었다.

 

 

-

 

 

불길한 예감이 들어 달려갔을 때는 이미 늦었다.

처참히 나가떨어진 문, 바스라진 벽지, 산산히 부서져버린 가구들.

너의 온기가 이곳저곳 묻어있던 공간에는 지독한 파열음의 냄새만이 가득했다.

구역질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며 덜덜 떨리는 다리로 힘겹게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인 것은 매케하게 피어오른 연기 사이로 힘겹게 들썩이는 무언가, 바스라질 것만 같은 움직임.

불안감이 점철되어 흔들리는 동공에 초점을 맞추고 쳐다봤다.

 

고정된 시야에 보이는 것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너.

조각나고 으깨진 살점들이 이제서야 눈에 보인건 왜일까. 

 

세상이, 멈췄다.

 

 

-

 

 

홀린듯이 걸어갔다. 누군가가 뇌를 꼬아놓은 것 같이 움직임은 한없이 비틀거렸지만 멈추지 않고 걸어 너를 내려다봤다.

그런 나를, 너는 잔잔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미움도, 원망도 들어있지 않은 눈. 그 모습에 눈물이 일렁이고, 시야가 흔들렸다.

날 미워하고 원망해줘. 너가 이렇게 된 것은 다 나때문이야.

 

뻣뻣하게 굳어가는 손이 나를 향해 바들거리며 뻗어지고 작은 입술이 힘겹게 열렸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의 나약하고 작은 음성.

 

괜찮아요.

 

뿌옇게 변해버린 눈을 찬찬히, 두어번 꿈벅거리더니 물기 하나 없이

허옇게 터버린 입술을 열어 조곤조곤 흘려내는 메마른 읊조림.

 

외로워 하지마요.

 

잔잔히 떠다니는 바람이 덮어버릴 정도로 미약한 목소리.

너는 예정된 마지막에도 홀로 남을 내 걱정을 하는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부서진 잔해가 흐트러진 방 안에 우두커니 서서 너를 바라보는 것 뿐이었다.

딱딱한 타일바닥에 망가진 기계처럼 꺾여 누워있는 모습은 초라할 정도로 바싹 마르고 그을렸지만

나에겐 그저 생그러웠다. 갓 피어난 꽃송이처럼, 알알이 여물어 빛나는 작은 과실처럼.

 

여전히 아름답고 빛나는 내 사랑아.

 

괜찮아, 괜찮을거예요. 떨리는 입술로 나조차도 믿지 않는 말을 중얼거리고는 눈을 접고 입꼬리를 올리며 크게 웃었다.

아마 너를 만나 함께 했던 날 중 가장 환하게 웃었을 것이다. 내 다리께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 손을, 몸을 낮추고 꼭 붙잡아보았다.

따스함, 온기. 어렴풋이 뜨여진 너의 시선은 우리가 맞잡은 손을 향해있었다.

문득 나에게 손을 잡아 달라고 조르던 너가 생각나서 마음 한 켠에서 슬픔이 울컥이며 목을 울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마음껏 너의 손을 잡았을텐데.

나에게 매달려오는 작은 품을 꼭 끌어안고 끊임없는 애정을 속삭였을텐데.

세상에 더 없을 정도로 열렬히 사랑해줬을텐데.

 

겉잡을 수 없이 치밀어오르는 후회에 꿀꺽 침을 삼켜

간신히 내리누르고는 입을 열어 천천히 이 곳을 떠나고 있는 너에게 말했다.

 

좋아해요.

사랑해요.

정말 많이 사랑해요.

 

대답은 없었다.

남은 것은 이젠 빈 껍데기가 되어버린 너의 입가에 맺힌 옅은 미소뿐.

 

너는, 나의 고백을 들었을까.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질문을 속으로 던지고 미동 없이 널부러진 너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는 귓가에 뒤늦은 기억을 읊었다. 고마움과 미안함, 너가 나에게 준 것에 대해, 그리고 내가 너에게 준 것에 대해.

부끄럽게도 너에게 준 것이 많이 없어서 나는 이내 목놓아 울 수 밖에 없었다.

 

허탈한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차가운 바닥에 뉘여진 너의 머리를 조심스레 내 무릎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너의 얼굴에 방울방울 묻어나는 내 눈물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삶, 행복, 사랑.

당신은 나에게

유일(惟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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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점 보는 김춘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