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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fection

 

written by. Seon

 

Yoosung

 

 

포동포동 살이 올라있는 작은 뺨, 생기가 가득 찬 눈동자, 향긋한 살냄새. 특유의 때 묻지 않은 해맑음까지.

더 없이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그 아이는.

 

 

-

 

 

“아이들이 말썽을 많이 부려서 조금 힘들 수도 있어.”

 

그래도 어린 나이에 이런 곳에 봉사 올 생각을 다 하고, 기특하네. 원장은 교복을 입고 찾아온 그녀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허물어져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고아원에서는 군데군데 초록빛 내음이 새어나왔다. 풀냄새, 나무냄새.

자연스레 흘러들어오는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며 느릿한 동작으로 이곳저곳 두리번 거리고 있자니

원장은 고아원 내부를 돌아보자며 그녀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내부는 외관만큼이나 낡아있었다. 한 발 딛을 때마다 끼익끼익 거리는 나무바닥, 여기저기 쩌적 갈라져있는 콘크리트 벽,

살짝 내려다 본 창틀에는 뿌연 회색먼지가 한웅큼. 불쾌함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런 그녀를 아는지 모르는지 원장은 내부 시설을 소개해주는 틈틈이 아이들에 대한 설명도 해주느라 정신 없었다.

이름, 나이, 성격,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등.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게 뜯어져 발 끝에 채이는 나무 부스러기를 가지고 놀며 원장의 옆에서 걷던 그녀는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창 밖을 내다보았다.

쨍하게 내리쬐는 햇빛의 뒷 편으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 사이에서 홀로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있는 작은 남자아이.

 

눈이, 마주쳤다.
뚫어질듯 쳐다보는 시선이 묘하게 민망해서 슬쩍 오른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네보았지만 아이는 미동도 없었다.
그저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원장선생님. 저 아이는 누구에요?”

 

저기, 혼자 앉아서 이 쪽을 보고 있는 아이 말이예요. 그녀는 남자아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질문을 던졌다.

그녀의 손가락이 향한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리던 원장은 아이를 보더니 포근한 웃음을 지었다.

 

“아아, 유성이 말하는거구나.”

 

이름은 김유성, 나이는 아마도 10살.

버려졌을 당시의 나이가 정확하지 않아서 고아원에 들어오게 된 날을 기점으로 나이를 세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성이, 유성이... 천천히 이름을 곱씹고 있는 그녀의 옆에서 원장은 아이를 가리키며 ‘천사’ 라는 표현을 덧붙였다.

하얀 피부, 태양빛을 흠뻑 머금은듯 화사한 금발, 잘 여문 포도알을 닮은 보라색 눈동자, 가지런히 꼽고 있는 두 개의 실삔.

뙤약볕 아래에서 뛰놀아 까맣게 탄 아이들과 다르게 혼자 뽀얗고 곱상한 생김새가 언젠가 교과서에서 보았던

꼬마천사의 모습과 꼭 닮아있다고 느낀 그녀는 원장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짜 천사 같네요.”

 

그녀의 빠른 수긍에 호호 웃던 원장은 유성이를 천사라고 표현한 이유는 다른 것에 있다면서 말을 덧붙였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을 뛰어다니거나 툭하면 엉엉 울며 땅바닥에 주저앉아 발을 동동 굴러대며 떼를 쓰는 것이

익숙한 또래 아이들과는 다르게 유성이는 늘 인형 같이 고운 자태로 책만 보고 성격 자체가 얌전해서

이 고아원에서 유일하게 말썽을 일으킨 적이 없는 아이라고 한다.

 

얼굴도, 마음도 어여쁜 꼬마천사.
낮게 중얼거린 그녀는 다시 창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이의 눈길은 여전히 그녀에게 닿아 있었다.

 

 

-

 

 

봉사는 일주일에 두 번, 주말마다 진행되었다. 아이들과 친해 질 수는 있을지, 혹시 낯선 사람이라고 싫어하는건 아닐런지

걱정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첫 봉사날부터 아이들은 그녀를 잘 따랐다. 덕분에 봉사는 무사히 한 달을 넘겨가고 있었고,

이제는 그녀가 고아원 입구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마구 손을 흔들며 반기는 것이 일상이었다.

 

"와, 누나다!"
"우리 유성이, 누나 보고 싶었어?"
"응! 완전 많이!

 

하지만 그런 아이들 중에서도 그녀를 제일 좋아하는 건, 단연코 유성이. 누나라고 부르면서 졸졸 쫓아다니는 것은 예삿일도 아니었고,

그녀가 일을 끝내고 쉬고 있을 때는 슬금슬금 다가와서 손을 잡아달라거나 안아달라고 조르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굳이 들어주지 않아야 할 내용의 부탁도 아니었고, 울 것 같은 얼굴로 옷자락을 꼬옥 붙잡고 매달리는 모습 자체가

안쓰럽기 그지 없어서 그녀는 매번 웃는 얼굴로 유성이의 조름을 받아주었다.

 

껌딱지처럼 그녀에게 달라붙어있는 유성이를 볼 때마다 원장은 놀랍다는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지금껏 여러 봉사자들이 다녀갔지만 이렇게까지 따르는 모습은 보지 못 했고,

나이 치고는 조숙한 면이 있기에 무언가 해달라고 조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원래 어리광이 많은 타입인줄 알았는데. 그녀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반기는 유성이를 보며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작고 귀여운 남자아이의 풋풋한 애정공세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것이 자신만을 향한 것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역시 지금처럼 계속 유성이의 어리광을 받아주는 건 고아원의 다른 아이들에게도

소외감을 느끼게 할 수 있고 유성이에게도 그리 좋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자신이 봉사를 하는 한 달 동안, 유성이와 함께 있으면 아쉬운 얼굴로 머뭇거리며 다가오지 못 하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 아이들도 보았고, 직접적으로 왜 유성이만 좋아하냐는 물음을 들은 적도 종종 있었기에

조금 자제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안 그래도 외로운 아이들인데 편애를 체감하게 하는 것은 좋지 못 할 터.

게다가 유성이 역시 자신에게 과하게 매달리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무래도 내 선에서 적절히 조절해주는게 낫겠지.

 

"음... 유성아."

"응? 왜요, 누나?"

"앞으로는 누나가 유성이 손도 못 잡아주고, 안아주지도 못 할 것 같아."

 

친구들이 유성이를 질투할 수도 있고, 마음 아파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누나는 계속 유성이 좋아하니까 너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해해 줄 수 있지?

허리를 굽히며 눈을 맞춘 상태로 이야기 하자 유성이의 눈이 살짝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부터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안쓰러움에 결좋은 금발머리를 살살 쓰다듬고 있자니 나직한 목소리가 그녀의 귀로 흘러들어왔다.

 

"...인데, 왜요?"

 

 ...잘못 들은건가? 머리를 쓸어내리던 그녀의 손이 잠시 멈칫하자 유성이는 다시 입을 열었다.

 

"누나는 내 건데, 왜 안 되는거에요?"

 

순간, 그녀는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굳게 입을 다물었다.

작은 어린 아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을 단순히 표현한 말이라고 하기에는 유성이의 표정은 진득한 의문에 가득차 있었고,

짙게 가라앉은 눈동자 저편으로는 집착과 애착이 뒤섞여 움틀거리는듯 했다. 묵직한 그 눈빛에 오스스 소름이 돋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아이는. 10살 남짓되는 어린애에게서 받을만한 감정이 아니었고,

이 상황에서 냉정을 유지하기에는 그녀 역시 아직 어렸다.

 

 

-

 

 

결국 벌떡 일어난 뒤에 알수 없는 말로 더듬더듬 얼버무리며 도망치듯 자리를 뜬 그녀는

그 날 이후, 의식적으로 유성이를 피하기 시작했다.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상냥한 애정을 건네며 대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작은 어린 아이에게서 표현하지 못 할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유성이는 개의치 않았다. 그 날의 대화는 아예 없었던듯, 늘 그랬던것과 같이 그녀에게 다가와 애정을 요구하곤 했다.

아니, 정확히는 이전보다 조금 더 심하게. 다른 아이를 챙겨주고 있을 때면 다다다 달려와서 그녀의 손길을 받고 있는 아이를

밀쳐 넘어뜨려 울리는 일도 다반사였고, 안아달라고 조르는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땅바닥에 주저앉아 건물이 떠나가도록 우는 일도 많았다.

 

그래도 그녀는 견뎌왔다. 아직 어린애잖아,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런걸거야, 내가 좀 더 잘 하자.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하지만 두려움이 인내심을 뛰어넘는 상황은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그녀가 봉사를 시작한 지 두 달 가까이 되던 날, 여느 날과 같이 안아달라고 조르는 유성이의 부탁을 조금 단호하게 거절하자

허망한 표정으로 서있던 아이는 이내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신의 뺨을 때리는, 일종의 자해 행위를 했다.

난생,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은 없었는데. 찰싹찰싹, 날카롭게 울리는 소리를 멍하니 귀에 담고 있던

그녀는 이내 정신을 차린 듯 황급히 다가가 유성이의 손목을 쥐고 말렸다.

그만해, 유성아. 제발, 그만해.

 

애절하기까지 한 그녀의 중얼거림에 아이의 행동은 뚝 멈췄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은, 꽤나 기뻐보이는 한 마디. 

 

"나 아프니까, 누나가 약 발라줘요."

 

마주친 아의 눈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밝은 모습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목구멍을 틀어막은 것 같았다.

그저 묵묵히 유성이의 손을 잡은 채 고아원 내 의무실로 향하는 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와중에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자신의 손을 있는 힘껏 쥐고 있는 유성이.

마음이 무겁고 속이 어지럽게 울컥거려 꿀꺽 침을 한 번 삼킨 뒤 문을 열었다.

드르륵. 의무실의 낡은 여닫이 문 소리가 유독 소름끼치게 들려왔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 두려움, 안쓰러움, 공포, 애잔함. 모든 것이 뒤엉킨 기분.

유성이를 작은 의자에 앉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덜덜 떨며 조잡하게 흐트러진 약통에서 연고를 찾아냈다.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 조차도 아이의 시선은 한 시도 떼어지지 않고 자신에게 집요하게 붙어있었다. 전부 느껴졌다.

후우후우. 그녀는 두 어번 심호흡을 하고는 뒤를 돌아서 유성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따가울정도로 붉게 부풀어오른 뺨에 약을 살살 문지르며 최대한 조곤조곤 말을 꺼냈다.

 

"유성아, 앞으로는 그러면 안 돼. 알았지?"

 

우리 유성이 고운 뺨이 아야, 하잖아.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내뱉은 말이 무색하게

아이는 싱글싱글 웃는 어투로 대답했다. 해맑고도, 잔혹하게.

 

"하지만 이래야 누나가 봐주는걸요?"

 

약을 펴바르던 손이, 멈췄다.

밝은 빛을 머금은 순수함, 그 뒷편에 웅크리고 있는 소유욕이

점점 밖으로 기어나오는 모습을 본 그녀는 더 이상 이 곳에 있을 자신이 없었다.

 

 

...

아아,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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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점 보는 김춘팔 :